아청법상 위계에 의한 간음이 성립되는 경우, 변경된 대법원 판결의 의미
1. 위계 등에 의한 간음이란
가. 위계에 의한 간음죄는 종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며, 형법 제302조에서도 정하고 있었으며 다만 그 대상을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로 한정하고 있었고, 법정형 역시 5년 이하의 징역에 불과하며 처벌의 정도가 매우 약하다는 비판이 있어 왔습니다.
나. 이때 말하는‘위계’란 간단히 말해서 속임수를 의미하지만, 구체적으로는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는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강학상 해석이었습니다.
다. 문제는 실제 위 법 조항을 적용함에 있어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던 반면 최근 지속적으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고 또한 이들은 성인에 비하여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가해자의 심리적 지배를 받아 실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간음이 이어진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2020년 8월 대법원은 위계 등 간음죄의 성립에 대하여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를 변경하였고, 이에 실무에서도 그 법 적용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2. 대법원판결의 변경
가. 종래 대법원판결
1) 과거 대법원판결은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에 대해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는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오인, 착각, 부지란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왔습니다(대법원 2001. 12. 24. 선고 2001도5074 등 판결 참조).
2) 그에 따라 대표적으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여관으로 유인하기 위하여 남자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피해자가 이에 속아 여관으로 오게 되어 성관계를 하였던 사건(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2029 판결)’, ‘피고인이 청소년에게 성교의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거짓말하고 청소년이 이에 속아 피고인과 성교행위를 한 사건(대법원 2001. 12. 24. 선고 2001도5074 판결’ 등에서 피고인의 행위를 위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3) 사실상 종전 대법원판결에 의하면, 피해자는 ‘간음’을 당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범죄 피해를 입어야만 하는데 대표적으로 이단이라고 불리는 종교단체에서 이루어지는 성범죄 피해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요컨대, 피해자는 가해자와 정상적인 성관계라고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지적·심리적 지배를 받은 채로 간음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본 법 조항이 문제 되는 사건은 대부분 미성년자가 어떤 대가를 지급하거나 혹은 가해자의 신상을 속인 상태에서 (법률적으로는 하자가 있지만) 동의 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라는 점에서 그 입법취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난점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 변경된 대법원판결
1) 이에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전원합의체 판결은, 종전 판례를 변경하여,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 있어서는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 위 변경된 판결의 논리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입법경위가 아동·청소년,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피보호자·피감독자, 장애인 등 성폭력범행에 특히 취약한 사람을 보호대상으로 하며 강간죄 등과는 비견되는 독립적인 가벌성을 가진 범죄라는 점, 무엇보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타인의 성적 침해 또는 착취행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으며, 성적 가치관을 형성하고 성건강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 그로 인하여 비록 아동·청소년이 외관상 성적 결정 또는 동의를 보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타인의 기망이나 왜곡된 신뢰관계의 이용에 기초한 것이라면, 이를 아동·청소년의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의한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3) 따라서 위 판결에서는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 왜곡된 성적 결정에 기초하여 성행위를 하였다면 왜곡이 발생한 지점이 성행위 그 자체인지 성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인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가 발생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오인, 착각, 부지에 빠지게 되는 대상은 간음행위 자체일 수도 있고, 간음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이거나 간음행위와 결부된 금전적·비금전적 대가와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던 원심의 판단을 배척하였던 것입니다.
【 위 대법원판결의 사실관계를 요약하면, 36세인 피고인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라고 소개하며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14세의 피해자를 만나 사귀게 되었고, 이때 피고인은 여러 사람을 사칭하며 피해자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 다음, 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선배인 자신과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속여 간음하였던 사건입니다. 14세에 불과한 피해자는 피고인이 허구로 설정한 상황 속에서 상당 기간 괴롭힘을 당하여 왔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3. 변경된 판결의 의미 및 실무에서의 적용
가. 판결의 의미
1) 과거에는 만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경우에만 피해자의 동의 여하를 불문하고 강간죄에 준하여 처벌해 왔습니다. 그런데 특히 유튜브, SNS 등의 영향으로 아동·청소년이 성을 접하는 시기가 단축되었고, 한편으로 이를 이용하여 아동·청소년의 성을 착취하려는 가해자 역시 늘어나게 되었다는 사회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2) 무엇보다 만13세 이상의 피해자와 성관계를 한 경우 그 경위를 불문하고 처벌받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공백이 있었기에 종래 검찰은 이를 아동복지법 위반(정서적 학대 등)으로 기소하여 왔으나 사실상 위 아동복지법의 처벌 규정은 지나치게 모호한 것으로서 위헌의 여지가 매우 높았습니다.
3) 결국, 국회는 이러한 논란 끝에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하여 성인이 만13세 이상 만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경우에도 동의 여하를 떠나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였으며, 재차 위 변경된 대법원판결은 위 신설조항에서도 포함되지 않는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하여 ‘위계’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귀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4) 물론 이러한 국회와 사법부의 움직임에 대하여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으나, 아동·청소년 피해자는 본인이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심지어 실제 그러한 피해를 입고도 자신이 비난받을 행동(예컨대, 성매매 등)을 했을 것이라는 죄책감과 부모님 등 주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걱정 등으로 피해 신고가 포기하는 일도 많다는 점을 감안하여 판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 위 변경된 대법원판결 이후 실무에서의 적용 예 – 피고인이 나이를 속여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한 경우
1) 서울북부지방법원 2021. 9. 28. 선고 2021고합128 판결은, 피고인이 2020. 6.말경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만16세)에게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을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기로 한 다음, 총 9회에 걸쳐 위계로써 아동·청소년인 피해자를 간음한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징역 5년,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 7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과 장애인복지시설에의 취업제한명령을 선고하였습니다.
2) 또한, 서울고등법원 2023. 4. 20. 선고 2022노2965 판결에서도, ① 피고인은 피해자가 만든 B 오픈채팅방을 통해 피해자와 대화하게 되었는데, 피해자는 경찰에서 “위 오픈채팅방에 본인의 나이가 ‘2007년생’이라고 적어 놓았고, 피고인은 자신이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소개하였는데, 피고인이 미성년자가 아니었으면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이 아니었고, 성관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진술한 점, ② 피고인도 경찰에서 “자신이 ‘19세로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피해자에게 거짓말을 하였고, ‘피해자가 성인은 받지 않아요’라고 해서 부득이 나이를 속이게 되었다”라고 진술한 점을 토대로, 피해자는 피고인이 고등학생이라는 신뢰 하에 성관계를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라고 볼 수 없어 피고인에게 징역 4년 6월을 선고하였습니다.
3) 위 판결 외에도 다수 사건에서, 특히 성인인 피고인이 미성년자라고 속이고 아동·청소년과 성관계를 한 경우 비록 외형적으로는 간음행위 자체에 동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무에서는 이를 ‘위계에 의한 간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주의할 점 – 의제강간과의 관계
가. 본 쟁점에서 가장 주의깊게 살펴봐야 하는 것은 미성년자의제강간과 위계에 의한 간음의 처벌 정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13세 미만과의 간음도 문제지만, 실무에서는 주로 만13세 이상 만16세 미만 아동·청소년과의 성관계 혹은 성매매를 하였을 때 피고인의 입장에서 어떤 방어를 해야하는지가 관건인데요.
나. 일단 미성년자의제강간의 경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8조의 2 제1항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됩니다. 반면, 위계에 의한 간음의 경우 동법 제7제 제5항에 따라서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선고받도록 되어 있어 본질적으로 형량에서 큰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 물론 정상참작사유가 많은 경우 양죄 모두 이론상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기는 하나, 위계에 의한 간음이 성립할 때에는 집행유예의 가능성이 현저히 적어지는 상황 역시 피고인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고려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라. 따라서 양죄의 성립 여부가 문제되었을 때에는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그리고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어떻게 피해 사실을 진술하는지 여부, 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만나게 된 경위, 피해자와 성관계에 이르게 된 과정이 매우 구체적으로 소명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