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사유 · 이혼가능성
CASE 02 이혼사유 · 이혼가능성

바람을 피운 유책배우자는 정말 이혼을 청구할 수 없을까?

'유책배우자 = 이혼청구 기각'이라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원은 그 이후 흘러간 시간과 현재의 혼인관계까지 함께 봅니다.

사례

의뢰인은 정말 이혼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본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바람을 피웠습니다."

배우자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의뢰인은 교제하던 사람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배우자는 절대로 이혼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가정을 먼저 버린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혼을 요구하느냐."
"나는 끝까지 이혼해 주지 않겠다."

주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네가 잘못했으니까 네가 이혼소송을 하면 당연히 진다." 실제로 유책배우자의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심지어 법률상담을 받은 뒤에도 "유책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는 설명만 듣고 몇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별거생활을 계속한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결론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이혼청구가 기각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법원이 기본적으로 유책주의를 취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즉 혼인관계를 파탄시킨 데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그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알고 있으면 실제 이혼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실제 사건을 검토할 때는 "유책배우자인가?"에서 판단을 끝내지 않습니다. 그다음 질문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 유책성이 지금도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별거했는지, 그 사이 두 사람의 생활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상대방이 실제로 혼인을 회복할 의사가 있는지, 유책배우자가 상대방과 자녀에 대한 경제적인 책임을 어떻게 부담해 왔는지, 이혼이 이루어졌을 때 상대방의 생활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바람을 피웠으니 평생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이혼할 수 없다"는 식의 이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법원도 일정한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관련 법리 및 판결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사이에서 법원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를 알아야 합니다. 유책주의는 쉽게 말하면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자신의 잘못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반면 파탄주의는 혼인관계가 실제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면 누구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는지와 별개로 혼인관계를 법적으로도 해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현재까지 유책주의를 기본원칙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판결이 대법원 2015.9.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일정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허용할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대표적으로 상대방 배우자 역시 실질적으로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이른바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 유책배우자의 잘못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나 당초의 유책성과 상대방이 받은 정신적 고통이 상당히 약화되어 더 이상 책임의 경중을 엄밀하게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경우 등이 그것입니다.

이 법리는 이후 판결에서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대법원 2022.6.16. 선고 2022므10109 판결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 유책행위 자체만 볼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연령, 혼인기간, 별거기간, 별거 후 형성된 생활관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회복 의사, 이혼이 인정될 경우 상대방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자녀의 상황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특히 이 판결은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는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갈등이 시작되었더라도 이후 상대방 역시 대화를 거부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혼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그러한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면 최초의 잘못 하나만으로 끝까지 한쪽 배우자에게 혼인파탄의 모든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 법원의 태도는 단순한 유책주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LAW | 재산분할에는 '부양'의 기능도 있습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을 허용할 때 법원이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가 상대방 배우자의 보호와 생활보장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일부 외국과 같은 일반적인 의미의 이혼 후 배우자 부양제도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재산분할 제도에 관하여 단순히 부부가 함께 만든 재산을 나누는 청산적 요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혼 이후 당사자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부양적 요소도 함께 고려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 2022.7.28.자 2022스613 결정 등에서도 이러한 재산분할의 성격을 명확하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을 볼 때도 단순히 "잘못한 사람이 이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만 해서는 부족합니다. 이혼을 인정할 경우 잘못이 없는 상대방 배우자와 자녀가 경제적으로 일방적인 희생을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충분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만 이것을 "돈을 더 주면 유책배우자도 무조건 이혼할 수 있다"는 공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재산분할과 생활보장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판단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례에 적용하면

'바람을 피웠다'에서 분석을 끝내면 안 됩니다

처음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의뢰인이 부정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분명 매우 불리한 출발점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사건 검토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부정행위가 언제 있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 이후 부부가 얼마나 오랫동안 별거했는지도 중요합니다. 별거 이후 서로 완전히 독립된 생활관계를 형성했는지, 미성년 자녀는 누구와 생활하고 있는지, 의뢰인이 배우자와 자녀에게 생활비와 양육비 등을 얼마나 부담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이혼을 거부하는 이유도 중요합니다. 실제로 혼인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혼인생활을 재개할 생각은 없으면서 단지 상대방에게 이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재산관계도 중요합니다. 이혼으로 인해 상대방이 현재의 생활기반을 잃게 되는 사건이라면 유책배우자 측에서는 상대방과 자녀가 이혼 후에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보호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사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에서 필요한 전략은 "나는 잘못했지만 그래도 이혼시켜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유책행위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혼인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현재 혼인이 실질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상대방과 자녀를 위해 어떤 책임을 부담해 왔고 앞으로 어떤 보호를 제공할 것인지를 법원에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혼전문변호사로서의 코멘트

유책배우자 사건은 '기각될 사건'이 아니라 '설계해야 할 사건'입니다

이혼사건을 많이 다루지 않은 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가끔 너무 단순한 설명을 듣고 온 의뢰인을 만납니다. "제가 바람을 피워서 이혼소송을 못 한다고 들었습니다." 법률의 기본원칙만 설명한다면 틀린 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법원이 유책주의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사건을 맡는 입장에서는 그 설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유책배우자의 상담을 하면 오히려 질문이 많아집니다.

부정행위는 언제 있었습니까?
별거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별거 이후 서로의 생활은 어떻게 분리되었습니까?
상대방은 정말 혼인관계를 회복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자녀에게는 어떤 책임을 부담하고 있습니까?
배우자의 현재 경제상황은 어떻습니까?
재산분할을 통해 상대방의 생활기반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같은 유책배우자 사건도 전혀 다른 사건이 됩니다. 특히 유책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했다고 해서 "어차피 기각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것은 이혼을 청구하는 유책배우자에게도 그렇고, 이혼을 거부하는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 입장에서도 "저 사람이 바람을 피웠으니 법원이 알아서 이혼을 기각하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유책배우자가 장기간 별거, 혼인관계의 실질적 파탄, 상대방과 자녀에 대한 경제적 보호와 배려 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면 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정말 혼인을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다면 그에 맞는 행동이 필요하고, 이혼이 이루어질 경우 자신의 생활보장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유책배우자의 이혼 사건을 처음부터 기각될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의 경과, 혼인관계의 현재 모습, 상대방의 혼인계속의사, 자녀와 배우자에 대한 보호, 재산분할과 생활보장까지 전체적인 구조를 설계해야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CHECK POINT
유책배우자로서 이혼을 원하는 경우
  • 자신의 유책행위가 무엇이고 언제 발생했는지 정확히 정리합니다.
  • 유책행위 이후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확인합니다.
  • 별거기간과 별거 이후 각자의 생활관계를 정리합니다.
  • 상대방과 자녀에게 생활비·양육비 등 경제적 책임을 어떻게 부담했는지 확인합니다.
  • 상대방이 실제로 혼인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사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 이혼 후 상대방과 자녀의 생활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합니다.
  •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단순한 금전문제가 아니라 전체 이혼전략의 일부로 검토합니다.
유책배우자로부터 이혼청구를 받은 경우
  • "유책배우자니까 당연히 기각된다"는 생각만으로 대응해서는 안 됩니다.
  • 상대방이 주장하는 별거기간과 혼인파탄 경위를 구체적으로 다툴 필요가 있습니다.
  • 본인에게 실질적인 혼인회복 의사가 있다면 그에 맞는 행동과 자료가 필요합니다.
  • 상대방이 배우자와 자녀에 대해 충분한 보호와 배려를 했다는 주장도 검토해야 합니다.
  • 이혼이 인정될 경우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구체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 위자료와 재산분할, 자녀 문제를 이혼 여부와 함께 종합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 법원은 여전히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합니다. 그러나 '유책배우자 = 이혼청구 기각'이라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원은 과거의 잘못만이 아니라 그 이후 흘러간 시간, 현재의 혼인관계, 상대방과 자녀에 대한 보호와 이혼 후 생활보장까지 함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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